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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준의 <영화속 父性 읽기> - I am Sam
2017-06-26

- ​아버지의 자격은 ? -


숀 팬, 이 사람 정말로 정신지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타코타 패닝, 지금은 성인이 된 그녀의 눈빛 속에는 도저히 철부지 소녀의 것일 수 없는 삶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었다. 정신지체인 아버지의 손을 잡아주면서 아빠 괜찮아, 미안해 하지 마세요. 난 행운아예요. 다른 아빠들은 아무도 공원에 함께 와주질 않아”(It's OK, Daddy. Don't be sorry, I'm lucky. Nobody else's daddy ever comes to the park.) 라고 말할 때 특히 감동적이다.  7세의 정신연령을 가진 아버지 샘 도슨(숀 팬)과 아버지의 지능을 넘어서고 있는 딸 루시(타코타 패닝)의 아름다운 이야기, ‘I am Sam’아버지는 자녀보다 언제나 똑똑해야 할까?” 그리고 아버지의 자격은 무엇일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샘은 노숙생활을 하던 레베카라는 여인을 통해 딸을 얻게 된다. 레베카는 출산직후 종적을 감춰버리고, 샘과 그의 딸 루시의 위태로운 동거가 시작된다. 비록 서툴기 짝이 없어도 진실된 샘의 부정(父情)에 힘입어 루시는 이쁘게 그리고 나름 행복하게 자라난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루시는 점점 아빠의 남다름을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영민하고 조숙한 루시는 아빠를 추월하는 자기 모습에 왠지 모를 슬픔과 부담을 가지게 된다. 그 결과 일부러 학교 수업을 게을리하면서 자신의 지적 성장에 스스로 제동을 걸고 만다. 이런 가운데 이들 부녀는 제 3자의 입방아에 올라 복지기관의 레이다에 걸린다. 그리고 급기야는 법원에 의해 격리조치에 이르게 된다. 그리곤 아버지의 자격에 대한 법정 공방이 이어진다.

부모는 아이보다 똑똑해야 하는가, 그리고 아버지는 언제까지 얼마나 아이보다 앞서 있어야 하는 걸까? 자식은 부모의 도움없이는 단 며칠도 생존할 수 없는, 전적으로 부모의 사랑에 의존해야 하는, 의심할 나위없이 열등한 존재로 출발한다. 하지만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전제에는 유효기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쉽게 망각하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 모두 어린 시절을 되돌아 보자. ‘나라면 저런 식으로 하지는 않을 텐데…’ 라고 생각한 때는 언제부터 였던가? 나부터 고백하자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 평가(어머니에 대해서는 시기와 강도가 상당히 달랐다)가 내 머리속을 채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성격이 불 같았던 아버지는 어느 날 이웃 남자와 시비가 붙어 싸우는 와중에 아들인 내가 아버지 편을 들지 않는다고 격분하셨었다. 그 때의 난감함은 지금도 생생한데 당시 어린 내가 생각해봐도 그 때 내가 아버지의 편을 들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버지는 그 때 그 일로 나를 더 이상 나무라신 적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비록 시시비비를 떠나 아버지 입장에서는 어린 아들에게서라도 지지를 받고 싶었던 심정도, 아버지가 느꼈을 서운함과 괘씸함도 어느 정도 이해도 된다. 어쨌든 아버지의 사리분별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매우 일찍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지능지수가 보통 사람의 그것보다 월등하셨던 나의 아버지에 대해서 말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내 딸은 아버지인 나를 언제부터 마음속으로 비판하기 시작했을까? 아직 물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대화 중간 중간 읽혀지는 행간을 보건대 내 딸이 마냥 이 아버지를 우상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말이 나온 김에 미리 기정사실로 인정해 두어야 할 것 같다. 나중에 마음의 상처를 덜 받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사실 요즘처럼 어지러울 정도로 급변하는 세상에서는 아버지가 모든 방면에서 아이들보다 현명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사실도 하나의 위안이 될 수 있다. 지능이 모자란 아버지가 딸보다 열등하게 되고 그것이 악영향을 미칠 거라는 주장에 대해 재판정에서 샘은 놀랍게도 이렇게 항변한다. “루시는 (어리지만) 저보다 잘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저도 루시보다 잘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저는 검사님보다도 잘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저는 재판장님 보다도 잘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덜 떨어진 아버지 샘의 이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일정한 부분에서 샘 도슨과 마찬가지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한편 이 영화는 자뭇 진지한 표정으로 아버지의 자격을 거론하고 있다. 그런데 루시는 엄마없이 오로지 아버지 샘의 손에 의해서 자라나기 때문에 샘의 경우는 아버지의 자격을 이야기하기에 썩 잘 어울리지는 않다. 양친이 다 있을 때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유한 특질이 드러나기 쉽다. 하지만 아버지 또는 어머니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경우에는 모성과 부성이 혼재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딸에게 홀로 쏟아 붓는 샘의 사랑은 그 빛깔이 모성애의 빛깔과 적잖이 겹친다. 아버지의 근엄함, 은연 중에 드러나는 아버지의 거친 남성性이 정신지체자 특유의 순수성에 의해 거세돼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 공방은 우리에게 아버지란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묻고 있다.

전통적으로 아버지에게 요구됐던 제1의 자격은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이었다. 오늘날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올라가면서 그 중요성이 예전만 못한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자격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발표된 연구보고서에서도 이런 인식이 간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20·30대 남성 근로자 중 임금소득 상위 10% 남성의 결혼 비율이 하위 10% 남성보다 12배가량 높으며, 정규직 남성이 비정규직보다 결혼 비율이 2배 가까이 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저출산과 청년 일자리’ 보고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선임연구위원, 2016.11.13)

하지만 최근에는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아버지의 자격으로써 사랑 및 정서적 지원(자녀와의 대화를 통해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고 의견을 존중해주는 상담자, 자녀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격려하며 친구와 같이 편안하고 다정다감한 정서지원자), 자녀의 삶에 함께 있는 것 등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물론 생계부양자와 훈육자 역할도 여전히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특히 자녀의 삶에 함께 있는 것2013년에 설립된 비영리단체 함께하는아버지들의 취지와 맞닿아 있다. ‘함께하는아버지들이라는 단체의 이름도 이러한 흐름이 반영된 것이다. ‘함께하는이 단체의 지향을 함축하고 있는데, 에리히 프롬이 소유나 존재냐에서 말하는 존재적 실존양식을 추구하고 있다. 소유적 실존양식의 대표적 예가 바로 돈으로 아버지노릇을 대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함께하는아버지란 아이들의 삶 속에 아버지가 풍덩 빠져서 아이들과 부대끼고 느끼면서 함께 경험을 나누는 아버지다.   

영화 속에서는 미셸 파이퍼가 분한 유능한 변호사 리타가 샘을 변호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 밖 이곳 한국에서는 사단법인 함께하는아버지들이 샘을 옹호하고자 한다. ‘함께하는아버지들은 말한다. 아버지는 아이보다 언제나 똑똑할 수도 없고 똑똑한 것이 절대적 자격이 되지 못한다고. 그리고 그 무엇보다 샘은 루시의 삶 속에 충분히 담궈진 아버지, 함께하는 아버지였다고 변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