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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쿠르스테스의 침대
2016-08-25

"아니, 너한테 돈을 벌라 그래 뭘 하라 그래?, 앉아서 공부만 하라는데, 그걸 못해?"

"아버지, 그게 저는 너무 힘들어요"

"뭐가 힘들어? 뭐가?, 도대체! 덥다 그래서 네 방에 에어콘도 따로 놔줬잖아"

아버지는 매우 격앙되어 아들을 추궁한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 앞에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순간 아이의 얼굴이 하얗게 굳으며, 아이의 눈가 밑의 볼살이 파르르 떨린다.

그와 함께 아이의 안경까지 사르르 떨린다.

"야, 나는 나같은 아버지가 있었으면, 박사도 벌써 됐을거다.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는데, 할아버지가 돈이 없어서 못했어. 그나마 뒤늦게 내가 벌어서 겨우 야간학교 다녔다. 너는 뭐가 부족해서 이걸 못하냐? 참 한심하다."

아버지는 그렇게 내뱉고는 아이의 방에서 나가버린다.

 

이런 일상이 우리에게 그다지 낯설지 않을 수 있다.

이 땅의 모든 학생과 학부모들의 12년간의 고전분투 중의 한 장면일 것이므로. 

 

실제로 이런 부모를 만나보면, 정말로 아이가 미워진다고들 말한다.

자기는 너무 하고 싶었지만 못한 것이 한스러워서, 내 아이에게는 원 없이 공부시키고 싶은데, 정작 아이가 공부에 흥미가 없다는 사실이 기가 막히고 분노스럽다.

앉아서 공부만 하라는데, 왜 그것도 못하나? 아버지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정말로 공부하는 작업을 해보면, '그것도'라는 것이 그리 만만치는 않다.

아버지가 말하는 '그것도'는 막연한 소망과 기대가 얹혀진 다분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희망사항이다.

그러나 오늘날 학생인 아들에게 '그것도'는 너무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구체적으로 펼쳐보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늦잠 자고 싶은데), 가방을 싸들고 나간다(집에서 쉬고 싶은데), 학교 수업을 듣고(별것도 없는 식상한 수업은 아이들을 졸립게 만드는데),  방과후에는 학원 수업을 듣고(남들이 다 하는 선행을 나만 안할수도 없으니), 밤에는 자습을 한다(아, 피곤해~), 귀가하면 몸은 천만근으로 무겁다. 엄마들이 반기며 간식을 제공한다(아, 다 귀찮은데, 또 이거 먹고 공부하라구?), 부모님의 조건부 사랑에 감사보다는 지쳐간다.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시험행사의 결과에 귀추를 세우는 부모와 교사들, 학생 스스로도 매우 긴장하고 서열화된 자기를 들여다보는 것이 정말 괴롭고 두렵다. 언제 끝나나? 이 지루한 작업은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면 1차적으로는 마무리가 된다.

 

이런 빡빡한 일정은 아버지가 말하는 단순한 '그것도'가 아니다.

아이들은 정말 힘들고 지쳐있는데, 아버지의 학업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아이들과 소통을 이루기 힘들다.

그것은 아버지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아이를 눕히고, 매일 밤마다 침대 길이에 아이를 맞추고 있는 작업과도 같기 때문이다. 

어느 덧 아이는 아버지의 침대에 맞춰갈 수도 있다.

그렇게 성장하면 잘 된 거라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그 침대에 맞추기 위해서 아이는 얼마나 고전을 했을까를 생각하면 눈물이 쏟아질 정도로 측은하다.

 

요즘 '다 지나간다'라는 말을 많이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지나가긴 하지만,여기저기 상처를 안고 지나간다.

그 때서야 아이를 쳐다보면, 아이는 침대에 맞추느라 어디를 자르거나 늘리거나 쪼그라드는 등의 과정을 통해서 망가져있을 수 있다.

그제서야 또 다른 치유를 위한 작업을 하려고 하지만, 만사에 정답은 치료보다 예방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지금 내 모습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아이를 내가 만든 침대에 눕혀놓고 "누워만 있어, 그러면 내가 너를 맞춰줄게. 누워만 있으라는데, '그것도' 못해" 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