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들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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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빠 그리고 '웃는 아빠'
2016-03-15

급기야 알파고()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 학교냐?”는 우스개 소리까지 등장했다. 아쉽게도 1승에 그쳤지만 정말 세기의 이벤트였다. 첫 번째 대국이 있던 날, 아빠 이세돌이 딸의 손을 꼭 잡고 대국장으로 들어서던 장면은 알파고가 결코 흉내낼 수 없는 한편의 드라마였다. 가슴이 터질듯한 긴장감속에서 꼬물거리는 딸의 손에서 전해오는 온기에서 용기를 얻는 아빠의 모습은 인간을 웅변해주었다.
이번 대회를 만들어 낸 구글, 그리고 아빠 이세돌을 보면서 작년 여름 동경에서의 만남이 떠오른다. 한사람의 아빠로서 나는 진작에 구글을 좀 갖고 놀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인터넷으로만 접하던 일본의 아버지단체, 파더링저팬(Fathering Japan)을 방문하기로 했고, 이메일로 첫 소통을 시작해야 했다. 말이 안통한다는 당연한 장벽을 만났다. 처음 이메일을 보낼 때에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제대로 일작(日作)을 해서 보냈다. 하지만 이어진 이메일 왕래에서는 모조리 구글번역기(외국어 번영 프로그램)를 이용했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적어서 구글번역기를 돌렸고 편지 말미에 이 글은 인터넷 번역프로그램을 이용한 것이므로 문맥이 어색할 수 있으니 양해해 주십시오라고 써놓으니 만사 오케이! 좋은 건 물건너에서도 통했다. 2번째 답장부터는 저쪽에서도 인터넷번역기를 이용해서 보내왔으니 말이다. 그렇게 구글의 도움으로 한일 아버지단체의 대표가 동경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했던 것이다.
 
안도 테츠야 대표가 이끌고 있는 파더링저팬은 육아하는 남자라는 의미의 이쿠맨을 일본 사회에 유행시키는데 앞장섰고 현재도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아버지단체이다. 이 단체의 슬로건은 웃고 있는 아버지들이 일본을 살린다!”이다. ‘웃는 아버지... 우리의 좋은 아버지(아빠)’와는 뭐가 어떻게 다른 걸까?
 
수능을 마친 고3 교실에서 "앞으로 살 날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면, 당신의 을 이루는 것과 ‘5억의 돈중에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이 던져진다. 학생들은 하나같이 꿈을 이루기 위해 1년을 보내겠다고 입을 모은다. 시한부 삶이라는 무거운 질문이었음에도 아이들 특유의 발랄함이 여기저기서 튀어 오른다. 갑자기 교실안 조명이 꺼지면서 스크린 속에 학생들의 아버지들이 등장한다. 학생들은 어리둥절해 하면서 눈과 귀를 쫑긋 세운다. 화면속에서 아버지들은 같은 질문을 받게 되고, 아버지들은 하나같이 5억 원을 선택하겠다고 한다. 남은 가족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서.... 어둠속에서 학생들은 눈물을 흘린다.
 
지난 연말쯤에 본 가장, 지키고 싶은 꿈이라는 제목의 동영상 내용이다. 이 아버지들이 바로 좋은 아버지들 아닐까?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감동적인 아버지들이다. 동영상을 보면서 금새 눈이 그릉그릉해졌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100% 감정이입을 막는 뭔가가 꿈틀거렸다. 그건 나라면 5억 원이 아닌 꿈을 선택하겠다는 찰나적 선택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아내가 안다면 당신은 역시 이기적인 사람이야!”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기적(?) 아버지인 나는 주장한다. 남은 1년을 돈이 아닌 그 무엇으로 채우는 것이 아버지 본인을 위해서도 남아있는 가족을 위해서도 더 가치롭다고 말이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이 감동적 동영상이 더 많은 희생으로 아버지노릇을 더 잘(?)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할까봐 염려도 된다. 한번은 이 이야기를 듣던 어느 매우 좋은아빠가 자기 경험을 털어놓았다. 일찍 퇴근해서 집에 왔더니 아내와 아이들이 없더란다. 여느 때 같으면 아내와 아이들을 찾는 전화부터 했을 텐데 그날은 그러지 않았다. 그리곤 거실 소파에서 웅크리고 있던 자신을 한참 만에 발견했다. 그 때 그는 그동안의 좋은 아빠 노릇이 또 하나의 노동이었단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 했다. 어쩌면 좋은아버지의 맨얼굴은 상당히 낯선 것일지도 모른다.
 
토론회에서 만났던 배우 정은표씨는 아내가 아이들에게 아빠가 너희들을 위해서 새벽에도 한밤중에도 일을 나간다고 말하면 손사래를 친다고 한다. “아니야, 아빠는 너희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빠 스스로를 위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야라고! 그게 늘 즐겁게 일할 있고, 아이들에게도 늘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파더링저팬에서 말하는 웃는아빠란 이런 게 아닐까?
 
이처럼 좋은아빠 되기는 좀 많이 어렵다. 반면 웃는아빠가 되기는 그냥 웃으면 되니까(?) 무척 쉽다. 좋은아빠인지 아닌지는 주변에서 결정한다. 아내와 아이들 관점에서 평가된다. 그러나 웃는아빠인지 아닌지는 아빠가 스스로 결정하면 된다. 결과적으로 좋은아빠인지 여부는 쓸모돈계산에 따라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웃는아빠인지 여부는 진심으로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하는지로 족하다.
 
지난 2월 정부가 발표한 제3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서는 좋은아빠의 역할이 특히 강조되고 있다. 부디 남성의 육아참여 정책에 웃는아빠의 개념이 접목되길 바란다. 일본에게 배울 건 아직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김혜준 대표 / (사)함께하는아버지들